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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건축사 34. 세계로 열린 창, 1988 올림픽 이후 한국 현대 건축의 방향 전환한국 건축사 2025. 9. 28. 07:19
1988년 서울 올림픽은 단순한 체육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압축 성장의 결과로 산업화와 도시화를 빠르게 겪고 있었지만, 문화적 자존감과 국제적 위상은 여전히 세계에 확실히 각인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올림픽은 한국이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세계와 대등하게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이는 곧 한국 건축사에도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1980년대까지의 건축은 경제성, 효율성, 그리고 대량 공급 중심의 주택·공장 건축이 주를 이뤘습니다. 도시 외곽에는 획일적인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중심부에는 단순한 기능 위주의 건물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올림픽은 이런 흐름을 바꾸는 거대한 계기였습니다. 전 세계 언론이 서울을 집중 조명하면서, 한국 건축은 더 이상 기능적 효율성에만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면서도 한국적 정체성을 표현해야 한다는 필요가 제기되었고, 이를 통해 한국 건축은 세계적 보편성과 지역적 특수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단계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올림픽 경기장과 현대 건축의 실험 무대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며 건설된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은 그 자체로 한국 현대 건축사의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 김수근은 한국 건축계의 거장으로, 당시 국가적 상징성을 담는 동시에 기능적 완벽함을 갖춘 구조물을 설계해야 했습니다. 그는 원형 경기장 설계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한국적인 미감을 반영하기 위해 곡선과 대칭을 조화롭게 활용했습니다. 거대한 규모의 지붕을 안정적으로 지탱하기 위해 최신 구조공학 기술이 도입되었고, 이는 한국 건축이 대규모 국제 경기장을 자체 기술력으로 건설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체조경기장과 수영장, 그리고 승마 경기장 등 다른 시설들도 단순한 ‘운동 경기 공간’이 아니라 국제적 건축 트렌드를 반영한 작품이었습니다. 예컨대 수영경기장은 관람석의 경사 각도와 수면 반사 효과를 고려해 설계되었고, 체조경기장은 무대 장치와 조명 시스템을 수용할 수 있는 개방형 지붕 구조를 채택했습니다. 이러한 설계는 경기장이라는 기능적 요구를 충족하는 동시에 관람 경험의 질을 높였습니다. 올림픽 시설은 이후 공공건축에서 ‘이용자 중심 설계’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확산시켰고, 한국 건축계가 더 큰 실험을 시도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올림피 주경기장 국제화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도입
올림픽 이후 한국 건축계는 국제화의 물결 속에 빠르게 재편되었습니다. 해외에서 교육을 받은 건축가들이 귀국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과 하이테크 양식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이 시기 대표적인 건축가로는 승효상, 김종성, 김인철 등이 있으며,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한국 건축의 정체성을 탐구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은 단순히 새로운 미학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건축 양식과 역사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예술의전당(설계: 엄덕문)은 전통 궁궐 건축의 축선과 공간감을 현대적 공연장 기능과 결합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대지와의 관계를 강조한 마당 공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동선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하나의 ‘도시적 문화 단지’로 기능하게 했습니다.
또한, 삼성동 코엑스는 전시, 회의, 쇼핑, 문화가 한 공간에 집약된 복합 건축물로서, 한국 건축이 상업·문화·도시 공간을 통합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당시 도입된 유리 커튼월, 대형 철골 구조는 한국 건축이 기술적 한계를 넘어섰음을 증명했습니다. 이처럼 올림픽 이후의 건축은 세계적 트렌드를 수용하면서도, 점차 한국 고유의 건축 언어를 찾기 위한 이중적 탐구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도시 재개발과 서울 스카이라인의 급격한 변화
올림픽은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를 전 세계에 드러내는 계기였습니다. 따라서 도시의 외관과 스카이라인을 정비하는 것은 단순한 미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이미지를 형성하는 전략적 과제였습니다. 서울시는 주요 도로를 확장하고, 도심 고층화와 재개발을 가속화했습니다.
여의도는 63빌딩(1985년 완공)을 중심으로 국제 금융 중심지로 변모했으며, 이후 IFC 서울, 여의도 파크원과 같은 글로벌 기업 오피스 타워들이 들어섰습니다. 강남 일대는 올림픽을 계기로 대규모 도로망과 지하철이 확충되면서 아시아 유수의 비즈니스 지구로 성장했습니다. 종로와 중구 역시 현대화된 오피스 빌딩으로 채워졌지만, 동시에 경복궁, 창덕궁 등 역사적 공간과의 충돌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 건축계는 경제 성장의 상징물로서의 초고층 건축과 역사 보존이라는 상반된 과제를 동시에 떠안게 되었습니다. 도시 재개발은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전통적 도시 맥락을 무너뜨린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결국 올림픽은 한국 건축에 있어 도시와 건축의 관계, 즉 도시 정체성과 건축적 가치의 균형이라는 영원한 숙제를 남겼습니다.
여의도의 스카이라인 전통 건축의 재해석과 현대 건축 정체성 모색
1988년 이후 건축가들은 단순히 세계 건축 양식을 수용하는 데서 벗어나, 한국적 건축 정체성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표현할 것인가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한옥의 공간 구성 원리와 미학을 현대 재료와 기술로 풀어내는 시도로 이어졌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립중앙박물관(2005, 민현식·정림건축)"입니다. 이 건물은 남북으로 긴 축을 따라 전시관이 배치되어 있으며,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열린 마당은 궁궐의 정전과 후원을 연결하는 공간적 맥락을 연상시킵니다. 동시에 대형 유리와 석재를 사용해 현대적 기능을 충족시켰습니다.
또한 안양 파빌리온(승효상)은 한옥의 마당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건물 내부와 외부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는 단순히 미적 요소가 아니라, 한국인의 생활 방식과 공간 감각을 현대 건축 언어로 풀어낸 결과물입니다.
이처럼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모색하는 흐름은 단순한 ‘양식 차용’이 아니라, 세계화 시대 속에서 한국 건축이 자율적 정체성을 구축하는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이는 건축을 산업 생산물이 아닌, 문화적 자산으로 바라보게 했고, 이후 한국 건축이 세계적 건축상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1988 서울 올림픽은 한국 건축사에서 단순한 건설 붐이 아니라, 정체성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올림픽 경기장은 대규모 구조적 실험의 장이 되었고, 국제화는 새로운 건축 언어를 도입했으며, 도시 재개발은 서울을 세계적 도시로 도약시켰습니다. 동시에 전통의 재해석은 한국 건축이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오늘날 서울과 한국의 건축물 속에는 여전히 그 시기의 실험과 고민이 녹아 있으며, 이는 앞으로도 한국 건축이 세계와 교류하면서 고유한 길을 찾아가야 함을 시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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