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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건축사 42. 이타미 준의 한국 건축 해석 - 풍경과 건축의 조화한국 건축사 2025. 10. 6. 07:43
건축가 이타미 준(본명 유동룡)은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성장했지만, 생애 후반에는 한국에서 활동하며 깊은 건축적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는 단순히 건축물을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라, 풍경과 건축, 그리고 인간의 삶을 하나로 묶는 철학적 창조자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건축 세계는 전통을 단순히 복원하거나 양식을 모방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자연과 건축이 대등하게 호흡하는 관계를 탐구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한국의 건축사는 조선 시대 이래로 자연을 존중하며 집을 짓는 전통을 이어왔는데, 이타미 준은 이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며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대표작들은 제주도의 수풍석 미술관, 방주교회, 포도호텔 등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각각의 건축물은 한국적 자연관을 담아내면서도 세계 건축사적으로도 주목받을 만큼 독창적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가 한국 건축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리고 그 철학이 한국 건축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심층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한국 전통 건축과 자연관을 계승한 이타미 준의 시선
한국 전통 건축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태도를 기반으로 발전했습니다. 한옥의 마당은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열린 무대였고, 대청마루는 바람이 드나드는 통로이자 가족이 소통하는 중심 공간이었습니다. 또한 기와지붕의 곡선은 산맥의 흐름을 닮았으며, 집을 둘러싼 담장은 자연을 가두는 장치가 아니라 경계를 완화하는 장치였습니다. 이타미 준은 이러한 한국 건축의 전통적 철학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자신의 작업에 적극 반영했습니다. 그는 건축을 자연 속에 억지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스며들게 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수풍석 미술관은 ‘물(水)’, ‘바람(風)’, ‘돌(石)’이라는 세 가지 원초적 요소를 각각의 전시 공간에 담아내어, 제주의 자연이 곧 건축의 일부가 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단순히 작품만 보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부는 소리와 물의 흐름, 돌의 질감을 체험하면서 제주의 풍경과 하나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는 한국 전통 건축의 차경(借景) 사상, 즉 자연을 빌려와 생활 공간에 끌어들이는 미학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유동룡 선생(일본名 이타미 준, 1937~2011) 제주 건축물에서 드러나는 한국 건축 해석
이타미 준이 한국 건축을 본격적으로 해석한 무대는 제주도였습니다. 제주는 화산섬 특유의 거친 바람, 용암석, 바다와 하늘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풍경을 지니고 있는데, 그는 이를 단순히 배경으로 두지 않고 건축의 본질적 재료로 삼았습니다. 포도호텔은 외관에서는 거칠고 투박한 용암석을 사용하여 제주의 풍경에 스며들도록 했으며, 내부에서는 한옥의 처마 곡선을 연상시키는 곡선을 활용해 전통적 정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내부 공간은 밝고 따뜻하며, 창을 통해 바라보는 제주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실내에 들어옵니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히 서구식 호텔을 제주에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제주의 자연과 한국 전통 건축의 미학을 결합한 새로운 공간 창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대표작인 방주교회는 바람과 빛을 건축의 주재료로 사용했습니다. 예배당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시간대에 따라 다르게 드리우며, 신앙적 공간을 더욱 성스럽게 만듭니다. 바람이 드나드는 구조는 제주의 기후적 특성을 반영하면서도, 건축이 인간의 삶을 넘어 영적인 차원과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사례는 한국 건축사가 추구해온 자연친화적 정신이 어떻게 현대 건축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해석입니다.
제주도 포도호텔 (유동룡 作) 한국 건축사학적 관점에서 본 이타미 준의 철학
이타미 준의 건축은 단순히 아름다운 건물의 차원을 넘어, 건축사학적으로 중요한 함의를 지닙니다. 20세기 후반 한국 건축계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흐름 속에서 서구 모더니즘을 수용하는 데 치중했습니다. 많은 건축물들이 획일적인 아파트,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변하면서, 한국적 전통 건축의 미학과 철학은 점차 희미해졌습니다. 그러나 이타미 준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통 건축의 본질적 가치를 다시금 현대적으로 불러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김수근이나 김중업과 같은 건축가들이 시도한 ‘전통과 현대의 융합’과 맥락을 같이 하면서도, 보다 철저히 풍경 자체를 건축의 본질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닙니다. 김수근이 상징적 조형미와 공간적 긴장감을 강조했다면, 이타미 준은 바람과 물, 빛과 같은 자연 요소를 직접 건축의 주체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건축사학적으로 볼 때, 그는 한국 건축 전통의 ‘자연 친화적 태도’를 서구적 건축 언어와 접목해 제3의 길을 제시한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한국 건축사에 있어 전통 계승의 새로운 방식이자, 현대 건축 담론 속에서 한국 건축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시도로 평가됩니다.
풍경과 건축의 조화가 남긴 한국 건축사의 의미
이타미 준의 철학은 오늘날 한국 건축사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울림을 줍니다. 한국 건축은 산업화와 도시화 이후 자연과 점점 멀어지고, 경제성과 효율성을 앞세운 개발 논리에 따라 많은 전통적 가치가 희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타미 준의 건축은 다시금 건축의 근본을 묻습니다. 그는 “건축은 땅에서 솟아나는 생명체”라는 태도로 작업했으며, 건축이 자연의 일부가 될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한국 건축사가 오랫동안 지켜온 자연 친화적 전통과 맞닿아 있습니다. 특히 제주의 건축물들은 후대 건축가들에게 “어떻게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중요한 사례가 됩니다. 한국 건축의 미래는 단순히 서구의 양식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이타미 준처럼 자연과 풍경 속에서 새로운 건축적 언어를 발견하는 것에 있다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따라서 그의 건축은 단순한 개별 작품이 아니라, 한국 건축사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지향점을 제시한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타미 준은 한국 전통 건축의 자연 친화적 철학을 현대 건축의 언어로 재해석한 건축가였습니다. 그는 단순한 형태적 모방이 아닌, 풍경과 건축의 조화를 통한 철학적 건축을 실현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제주도의 돌, 바람, 빛을 끌어들여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었으며, 한국 건축사 속에서 전통과 현대를 잇는 새로운 해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결국 이타미 준은 한국 건축사에 자연과 건축이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는 길을 제시했으며, 이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건축가와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영감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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