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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건축사 25. 일제강점기의 도시 건축 변화와 근대 건축의 도입한국 건축사 2025. 9. 17. 07:46
한국 건축의 흐름은 수천 년 동안 자연환경, 사회적 질서, 정치적 권력에 따라 변모해왔습니다. 그 가운데 일제강점기는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은 시기로 평가됩니다. 전통적인 한옥 중심의 도시 경관과 풍수적 질서로 형성된 조선의 공간 구조는 급격히 흔들리며, 일본의 식민지 통치 논리에 의해 새롭게 재편되었습니다. 동시에 일본을 매개로 한 서양 근대 건축 기술과 양식이 유입되면서 한국 건축사는 전통과 근대, 그리고 식민지 권력이라는 세 가지 축이 복잡하게 얽히는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이 시기의 건축은 단순히 건물의 양식 변화에 그치지 않고, 사회 구조와 문화 정체성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전환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깊은 건축사적 의미를 지닙니다.
식민지 도시계획과 공간 질서의 재편
일제강점기 도시 건축 변화의 출발점은 식민지 도시계획이었습니다. 일본은 조선의 수도 경성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 근대적 도로망과 행정 중심 공간을 배치하며 자신들의 통치 질서를 시각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기존 조선시대의 도시는 풍수적 입지와 자연지형을 따라 골목길이 유기적으로 뻗어 있었지만, 일제는 직선적이고 체계적인 도로를 도입해 행정 효율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공간 개조가 아니라 권력 질서의 재편을 의미했습니다. 예컨대, 경복궁 앞마당은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으로 인해 그 상징성을 상실했고, 이는 곧 한국 전통 권위 체계가 시각적으로 해체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또한 도시계획은 단순히 행정 건물 건설에 그치지 않고, 상업지와 주거지의 구획화를 통해 일본인 거주 지역과 조선인 거주 지역을 분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일본인들은 기반 시설이 잘 갖추어진 신시가에 살았고, 조선인들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구도심이나 외곽으로 밀려났습니다. 이는 도시 건축이 단순한 생활 기반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공간적으로 구현하는 장치였음을 보여줍니다. 건축사적으로 볼 때, 이 시기의 도시계획은 서양 근대 도시 개념의 도입이자 동시에 식민지 권력의 공간적 통치 방식이었습니다.
공공건축과 근대적 양식의 이식
이 시기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공공건축물의 대규모 건립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1926년 준공된 조선총독부 청사는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르네상스식 석조 건물이었으며, 웅장한 돔과 기둥은 권위와 위압감을 상징했습니다. 이는 일본이 단순히 행정 공간을 마련한 것이 아니라, 식민 권력을 과시하는 건축적 상징을 세운 것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경성부청, 경성우체국, 조선은행 등 주요 공공건축물들은 신고전주의 양식이나 아르누보, 아르데코 등 서양 양식을 차용하여 지어졌습니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건축사적으로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서양 근대 건축 양식과 구조 기술을 소개했다는 점입니다. 철근콘크리트와 석조, 벽돌조는 내화성과 내구성을 갖춘 신재료로, 전통 목조건축의 한계를 넘어서는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둘째, 이러한 건축이 단순한 양식의 수용이 아니라 권력의 도구였다는 점입니다. 건물의 크기와 양식은 단순히 미적 선택이 아니라 정치적 메시지였고, 이는 근대 건축이 언제나 권력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조선 총독부 주거 건축과 생활 공간의 변모
도시의 주거 공간 또한 급격히 변화했습니다. 전통 한옥은 여전히 도시 곳곳에 존재했지만, 점차 일본식 주택이 보급되며 새로운 주거 양식이 등장했습니다. 특히 1920년대 이후 ‘문화주택’이라 불린 새로운 형태의 주택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일본식 목조 구조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내부에는 서양식 응접실과 유리창, 화장실, 주방을 갖춘 근대적 생활 공간이었습니다. 그 결과, 조선인 중 일부 계층은 이전과 다른 실내 중심의 생활 문화를 경험하게 되었고, 이는 전통 한옥의 마당 중심 생활과 대비되는 변화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도시 전반에 균등하게 확산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인 거주지는 상하수도와 전기, 도로 등 인프라가 잘 갖추어졌으나, 조선인 거주지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머물렀습니다. 건축사적으로 이는 단순히 주거 형태의 변화라기보다, 근대적 주거 개념이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선택적으로 도입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또한 문화주택은 이후 해방 후 한국의 도시 주택 개발과 아파트 건설에 영향을 미치며, 전통과 근대가 혼합된 한국적 주거 건축의 기원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근대 건축가의 등장과 건축사적 의의
일제강점기는 동시에 한국 근대 건축가들이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일본과 서양에서 건축을 공부한 한국인 건축가들은 제한된 활동 속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펼쳤습니다. 예를 들어, 박길룡은 일본에서 배운 근대 건축 기술을 토대로 한국적 건축을 모색했고, 해방 이후에는 김중업, 김수근과 같은 거장들이 이 기반 위에서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이 시기의 중요한 건축사적 의의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전통 건축과 근대 건축의 접목 시도가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일부 건축가들은 한옥의 공간 구성을 현대 건축 속에 반영하려 했으며, 이는 훗날 한국 현대 건축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둘째, 건축이 단순한 기술이나 미학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 정체성과 문화 주체성을 담아내는 장치라는 인식이 이 시기에 싹텄습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의 건축은 식민지 권력의 산물이면서도, 한국 건축사에서 근대 건축의 토양이 형성된 시기라는 이중적 의미를 가집니다.
일제강점기의 도시 건축은 단순히 양식의 변화를 넘어 도시 구조, 주거 방식, 건축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바꾼 시기였습니다. 일본이 주도한 도시계획과 공공건축은 식민지 권력을 과시하는 도구였지만, 동시에 서양의 근대 건축 기술과 양식을 도입하는 창구가 되었습니다. 주거 건축은 생활 문화를 변화시켰고, 근대 건축가들의 등장은 한국 건축사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습니다. 결국 이 시기는 전통과 근대, 권력과 저항이 복잡하게 교차하며 한국 건축의 새로운 지평을 연 전환기라 할 수 있습니다.'한국 건축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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